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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에서 테슬라 FSD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다 보면, 한국에서 들려오는 자율주행 소식이 더 반갑게 느껴집니다.
지난 9월에는 강남 심야 자율주행택시에 KGM의 2세대 로보택시가 투입된다는 소식을 전해드렸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간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단일 기업의 실증이 아니라, 정부 주도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손을 잡고 로보택시를 포함한 미래차 생태계 전체를 키우겠다는 발표입니다.
산업통상부는 9월 30일 '미래차 생태계 구축 협력' 업무협약식을 열고, 총 5건의 업무협약(MOU)을 체결했습니다.
오늘은 이번 협약의 내용을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1. 정부가 로보택시 '생태계'에 손을 댔다


이번 협약식은 제조업의 AI 전환을 위한 민관 협력체인 'M.AX 얼라이언스'의 AI 미래차 분과 활동의 하나로 추진됐습니다.
AI 미래차 분과는 그동안 차량용 반도체 국산화, 자율주행 승용·상용·로보택시 시대의 본격화, 데이터 생태계 구축 등을 논의해 왔습니다.

논의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는 명확했습니다.
다수의 미래차 부품기업들이 자금과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고, 기술은 있어도 양산 경험이 없어 상용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입니다.
좋은 기술을 가진 중소기업이 있어도, 그것을 차에 실어 대량 생산하는 문턱을 넘지 못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에 정부는 '함께 크는 M.AX 프로젝트'를 통해 대·중소기업 간 협력 강화를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대기업과 중소·스타트업 기업들이 각자의 혁신 역량과 강점을 연결해 모두의 성장 기회를 만들어 가는 성장형 상생협력 모델이라는 설명입니다.
중소기업은 기술을 제공하고, 대기업은 상용화를 지원하는 구조입니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내연차 부품업계들이 각자 여건에 맞게 미래차·로봇·방산 등 새로운 영역으로 안정적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종합지원 패키지를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내연기관 시대의 부품 생태계를 전동화·자율주행 시대로 연착륙시키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담긴 발언입니다.

2. 협약 뜯어보기 — 자율주행부터 반도체까지 5건


이번에 체결된 5건의 업무협약은 자율주행, 차량용 반도체, 로보택시 데이터 등 미래차의 핵심 분야를 골고루 아우릅니다.

자율주행 분야에서는 현대모비스의 SDV(소프트웨어 중심 차량)와 자율주행 스타트업 라이드플럭스의 자율주행 설루션을 KG모빌리티의 LV2+ 차량에 적용하는 협력을 추진합니다.
KGM은 자율주행 경쟁력을 높이고, 현대모비스와 라이드플럭스는 실제 차량 적용 경험을 시장 진출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대기업의 차량 플랫폼과 스타트업의 소프트웨어가 만나는 전형적인 상생 구조입니다.

차량용 반도체 분야에서는 현대모비스와 중소 팹리스(반도체 설계회사) 간 협력이 추진됩니다.
현대모비스가 필요한 반도체 품목과 요구사양을 제시하면 팹리스가 이에 맞춰 반도체를 개발하고, 현대모비스가 성능 검증 등을 통해 상용화 가능성을 검토하는 방식입니다.
대형 팹리스인 LX세미콘은 중소 팹리스인 관악아날로그·뉴라텍과 함께 센서·통신 칩 공동 개발·양산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LG전자는 자사의 베이스 칩(칩 간 통신 역할)과 중소 팹리스인 보스반도체의 AI 칩을 통합하는 협력을 추진하고, 후공정 업체인 하나마이크론이 개별 칩 품질 검증과 패키징을 담당합니다.

로보택시 분야에서는 카카오모빌리티, 자율주행 기업 SWM, 라이드플럭스가 센서 위치·성능 등 데이터 공유 포맷을 함께 마련하는 방안을 추진합니다.
정부 실증사업에 참여할 때는 공유 포맷에 따라 데이터를 수집하고 공유하기로 했습니다.
향후 시범운행에 투입되는 차량에는 라이다 등 외산에 의존하는 부품을 국산 부품으로 적용하는 방안을 우선 검토할 예정입니다.
데이터 포맷 표준화와 부품 국산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노리는 셈입니다.



3. 왜 지금 '대·중소 상생'이냐 — 현장의 목소리


협약식에 이어 진행된 기업 간담회에서 기업들은 미래차 전환을 위해 기업 간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하면서, 이번 MOU가 차질 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당부했습니다.

이 대목이 시사하는 바는 큽니다.
자율주행과 전동화 시대에는 자동차의 부가가치가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와 반도체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기존 내연기관 부품사들은 이 전환의 파고 앞에서 사업 방향 자체를 바꿔야 하는 상황입니다.


문제는 전환에 필요한 자금과 인력, 그리고 양산 경험이 중소기업에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기술 개발까지는 해냈지만, 완성차에 탑재되어 대량 생산되는 '마지막 1km'를 넘지 못하는 기업이 적지 않습니다.
이번 협약은 바로 그 '마지막 1km'를 대기업의 양산 경험과 검증 체계로 메우겠다는 구상입니다.

미국에서는 웨이모가 이미 여러 도시에서 유료 로보택시 서비스를 운영하며 앞서 나가고 있고, 한국도 강남 심야 자율주행택시 같은 실증 사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실증에서 상용화로 넘어가는 관문에서 생태계 전체의 체력이 중요해지는 시점입니다.
개별 차량의 성능 경쟁을 넘어, 산업 전체의 근육을 키우는 싸움이 시작된 셈입니다.

4. 밴쿠버에서 바라본 한국의 로보택시 로드맵


밴쿠버에서 FSD를 쓰며 느끼는 것은, 자율주행의 완성도는 결국 '얼마나 많은 차가,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모으느냐'에 달려 있다는 점입니다.
개별 기업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데이터 포맷을 표준화하고 부품을 국산화하며,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역할을 나누는 생태계 차원의 접근은 장기적으로 더 큰 힘이 됩니다.

이번 M.AX 협약이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로보택시 한 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로보택시를 만들고·운영하고·부품을 공급하는 산업 전체를 키우겠다는 선언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센서 데이터 공유 포맷 표준화는 여러 기업의 차량이 모은 데이터를 한데 모아 학습에 활용할 수 있는 토대가 됩니다.

물론 협약이 곧 성과는 아닙니다.
MOU가 실제 양산 차량과 유료 서비스로 이어지려면 앞으로 수년의 실행이 필요합니다.
다만 방향은 분명해 보입니다. 한국 자율주행의 다음 승부처는 개별 차량의 성능이 아니라 생태계의 체력입니다.
앞으로 M.AX 프로젝트의 후속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이 공간에서 짚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