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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캠핑장, 밤 9시.
옆 사이트에서 밥 짓는 냄새가 솔솔 납니다. 전기밥솥 냄새입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사이트인데 밥솥이 돌아갑니다.
비결은 옆에 세워진 전기차였습니다.
전기차의 큰 배터리를 가전제품 전원으로 쓰는 기능, V2L(Vehicle to Load)입니다.
오늘은 V2L이 정확히 뭔지, 실제로 뭘 할 수 있는지, 차를 살 때 뭘 확인해야 하는지 정리했습니다.

V2L, 전기차가 발전기가 되는 원리
V2L은 전기차의 고전압 배터리에 저장된 전기를 일반 가전용 교류 전원으로 바꿔 쓰는 기능입니다.
사용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충전 포트에 꽂는 외부 어댑터 방식입니다.
어댑터를 충전구에 꽂으면 일반 콘센트가 생기고, 차가 꺼져 있는 상태에서도 전기를 쓸 수 있습니다.
야외에서는 멀티탭을 길게 끌어다 텐트 쪽에서 쓰는 방식이 일반적입니다.
둘째, 실내 콘센트 방식입니다.
아이오닉5의 경우 2열 시트 아래에 콘센트가 있어, 시동을 켠 상태에서 바로 전원을 쓸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V2L은 시거잭에 꽂는 12V 인버터와 차원이 다릅니다.
12V 인버터는 작은 보조 배터리를 갉아먹어 오래 쓰면 방전되지만,
V2L은 수십 kWh짜리 고전압 배터리에서 직접 전기를 뽑아냅니다.
그래서 출력도, 지속 시간도 비교가 안 됩니다.
차량용 V2L로 뭘 돌릴 수 있을까 — 직접 정리해봤습니다

출력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아이오닉5 기준으로 북미(120V)에서는 최대 1.9kW, 유럽·한국(230V)에서는 최대 3.6kW까지 쓸 수 있습니다.
실내 콘센트와 외부 어댑터를 동시에 써도 합산 출력은 이 한도를 넘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캠핑 가전의 소비전력을 정리해봤습니다.
전기밥솥(취사 시) 약 1,000W, 전기포트 약 1,500W, 전기그릴 약 2,000W, 헤어드라이어 약 1,500W, 노트북 약 65W, 스마트폰 충전기 약 20W, LED 랜턴 약 10W, 가정용 냉장고 약 150W입니다.
북미 1.9kW 기준으로 따져보면, 전기포트 하나는 거뜬히 돌릴 수 있습니다.
전기밥솥과 노트북, 조명을 동시에 쓰는 것도 가능합니다.
다만 전기그릴(2,000W)은 1.9kW를 넘기 때문에 북미 사양에서는 단독으로도 쓸 수 없습니다.
한국 3.6kW 사양이라면 전기그릴과 밥솥을 동시에 돌리는 것도 가능합니다.
지속 시간도 계산해봤습니다.
배터리 77.4kWh짜리 차에서 방전 한계를 20%로 잡으면, 쓸 수 있는 전기는 약 62kWh입니다.
1.5kW짜리 전기기기를 계속 돌린다고 가정하면 약 41시간을 쓸 수 있습니다.
주말 캠핑 내내 전기밥솥과 조명을 쓰는 정도는 배터리의 몇 퍼센트에 불과합니다.
정전 대비용으로도 며칠은 거뜬한 셈입니다.
실전 활용 3가지와 꼭 알아야 할 안전장치
첫째, 캠핑입니다.
V2L의 가장 대중적인 쓰임새입니다.
전기밥솥과 커피포트, 전기장판까지 쓰면 겨울 캠핑의 질이 달라집니다.
아침에 커피포트로 물을 끓이고(1,500W), 밤에는 전기장판(약 60W)을 켜두는 정도는 배터리에 거의 부담이 없습니다.
다만 캠핑장의 소음·매너 규정은 별개로 지켜야 합니다.
둘째, 정전 대비입니다.
겨울 폭풍으로 정전이 잦은 지역에서는 전기차 한 대가 집의 비상전원이 됩니다.
냉장고(150W)와 조명, 휴대폰 충전, 노트북 정도는 하루 종일 돌려도 배터리의 10%가 채 안 듭니다.
와이파이 공유기와 노트북으로 재택근무를 이어가는 것도 가능합니다.
난방기기는 소비전력이 커서 별도 계산이 필요합니다.
셋째, 다른 전기차 구조하기입니다.
V2L 어댑터에 다른 전기차의 휴대용 충전기를 연결하면, 방전된 전기차를 구조할 수 있습니다.
실제 테스트에서는 시간당 약 6.5km 분량의 전기를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긴급 상황의 버팀목으로는 충분합니다.
안전장치도 챙겨야 합니다.
인포테인먼트 설정에서 V2L 방전 한계를 20~80% 사이로 정할 수 있습니다.
한계에 도달하면 V2L이 자동으로 멈춰, 전기를 다 쓰고 오도 가도 못하는 일을 막아줍니다.
장시간 사용할 때는 이 한계를 반드시 설정하세요.
내 차도 될까 — 살 때 확인할 3가지
첫째, 내 차가 V2L을 지원하는지 확인하세요.
현대·기아의 E-GMP 플랫폼 차종(아이오닉5·6, EV6·EV9, GV60 등)이 대표적입니다.
테슬라도 2026년 10월부터 출시되는 모델3와 모델Y에 V2L을 지원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두 달전에 구매한 제 모델3는 해당 기능이 없답니다.ㅠㅠ)
같은 브랜드라도 트림에 따라 빠진 경우가 있으니 계약 전 사양표를 확인하세요.
둘째, 외부 어댑터는 별도 구매인 경우가 많습니다.
실내 콘센트는 기본이지만, 충전 포트용 외부 어댑터는 옵션으로 파는 차가 많습니다.
캐나다에서는 서드파티 어댑터도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출력과 안전 인증을 확인하고 고르세요.
셋째, 출력이 내 용도에 맞는지 따지세요.
북미 1.9kW와 한국 3.6kW는 쓸 수 있는 가전이 달라집니다.
캠핑에서 전기그릴까지 쓰고 싶다면 3.6kW 사양이 유리합니다.
반대로 조명과 밥솥, 충전기 정도라면 1.9kW로 충분합니다.
전기차는 타는 기계인 동시에, 쓰는 전기이기도 합니다.
V2L이 있는 차를 고른다는 것은 발전기 한 대를 덤으로 얻는 셈입니다.
캠핑을 좋아하거나 정전이 잦은 지역에 산다면, 다음 차의 필수 옵션으로 넣어둘 만합니다.
한 번 써보면 "이거 없는 세상으로는 못 돌아가겠다"는 말이 나오는 기능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