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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어느 여름날 밤
밴쿠버를 떠나 밴프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뒷자리에는 아이들이 잠들어 있고
6시간째 운전에 지쳐있을 때
어디선가 탄내가 나더군요.
그리고 곧 고속도로 주변에
붉은 불길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고속도로에는 불길이 없었기 때문에
빠르게 그곳을 통과해야겠다고 느꼈을 때
갓길에 정차된 차량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도로 옆에서 튄 불똥에 불이 붙었는지
운전하시던 기사님은 화물칸의 화물에 붙은 작은 불에
난감해하고 계셨습니다.
제 차에는 작은 소화기가 하나 있었습니다.
얼른 차를 세우고 소화기를 들고 달려갔어요.
작은 불씨였기에 불은 금방 꺼졌고요.
기사님은 연신 고맙다며 인사를 하셨습니다.
작은 소화기 하나가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 줄은 몰랐던 경험이었어요.
여러분들은 혹시 차 안에 소화기를 가지고 다니시나요?
2024년 12월 1일부터는 5인승 이상 승용차는
차량용 소화기를 비치해야 하는 의무 대상이 됐습니다.
다만 모든 차에 한꺼번에 적용되는 건 아니라서,
내 차가 대상인지부터 날짜를 보고 가려내야 합니다.
대상인지 가리는 법과 고르는 법, 쓰는 법까지
순서대로 알려드릴게요.

내 차는 대상일까, 기준은 명의 이전 날짜입니다
이 의무화의 근거는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11조입니다.
2021년 11월 30일에 개정돼 3년의 유예 기간을 거친 뒤,
2024년 12월 1일부터 시행됐습니다.
그전까지 소화기 비치 의무는 7인승 이상 자동차에만 적용됐는데,
시행일 이후로는 5인승 이상 승용자동차와
승합·화물·특수자동차까지 넓어졌습니다.
적용 시점은 차를 산 날짜가 아니라 등록이 바뀐 날짜로 봅니다.
2024년 12월 1일 이후에 제작·수입·판매되는 자동차와,
소유권이 이전돼 새로 등록된 자동차부터 적용되거든요.
그전에 등록돼 명의가 그대로인 차는 소급 적용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같은 5인승 차라도 2024년 12월 1일 이후에
명의를 이전한 중고차는 대상이 되고,
그전에 사서 명의가 그대로인 차는 의무 대상이 아닐 수 있습니다.
새 차를 인도받을 때는 차에 소화기가 실려 있는지
확인하는 게 순서이고,
중고차를 인수할 때는 명의 이전 날짜와 함께
소화기 유무를 같이 확인하는 편이 훨씬 수월합니다.

대상인지 헷갈릴 때는 세 가지를 순서대로 물어보시면 됩니다.
승차 정원이 5인 이상인지,
2024년 12월 1일 이후에 제작·판매됐거나
명의가 이전돼 등록됐는지,
그리고 차 안에 자동차 겸용 표시가 있는
소화기가 손이 닿는 곳에 있는지가 그 세 가지입니다.
승차 정원이 5인 미만인 차는 의무 대상에서 빠지니까,
2인승 경형처럼 정원이 적은 차는 이 기준으로 먼저 가려내시면 됩니다.
의무 대상이 아니라고 해서 소화기가 필요 없는 건 아니고,
불이 났을 때 초기 대응 수단이 없다는 점은 같거든요.
확인 방법이 하나 더 있는데요,
자동차검사 때 소화기 비치 여부를 확인한다는 점입니다.
법에는 국토교통부 장관이 자동차검사 시 비치 여부를 확인하고,
그 결과를 매년 12월 31일까지 소방청장에게 통보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래서 적용여부와 상관없이
소화기 하나 정도는 안전을 위해 꼭 구비해 두시면 좋겠습니다.

소화기 고를 때 확인할 것, 표시 하나와 숫자 두 개입니다
소화기를 고를 때 가장 먼저 볼 것은 본체에 적힌 표시입니다.
용기 표면에 자동차 겸용이라고 적힌 제품이어야
차량용으로 인정받거든요.
일반 분말소화기나 에어로졸식 제품은
차량용으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소방서 안내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차량용 소화기는 일반 소화기의 성능시험뿐 아니라
진동시험과 고온시험까지 통과한 제품이라서,
흔들리는 차 안에서 오래 버티도록 만들어졌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가격표만 보고 고르기 전에
본체 라벨부터 확인하는 게 순서입니다.
숫자는 두 개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승용차는 5인승 이상 기준으로 1 단위,
0.7킬로그램 소화기 1개가 기준이거든요.
능력단위는 소화기가 불을 끌 수 있는 능력을
단위로 나타낸 것이라서,
단위가 클수록 더 큰 불에 대응할 수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승용차 기준을 넘기는 큰 제품을
사는 것 자체는 문제 되지 않지만,
자리와 고정이 먼저 해결돼야 하고,
기준에 못 미치는 작은 제품을 기준 제품처럼 두는 건
안 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종류는 쓰는 약제와 불을 끄는 방식에 따라
크게 세 갈래로 나뉩니다.
가장 흔한 건 ABC 분말소화기인데요,
일반 화재와 유류 화재, 전기 화재를 아우른다고 해서
ABC라는 표시가 붙고, 가격이 가장 무난한 편입니다.
다만 뿌린 뒤에 분말 잔해가 많이 남아
차 안 청소가 번거로워질 수 있거든요.
강화액 소화기는 액체 약제를 쓰다 보니
잔해가 적고 청소가 수월한 편인데,
가격이 분말보다 높은 경우가 많습니다.
이산화탄소나 하론 대체 방식은
잔해가 거의 남지 않지만
가격이 가장 높은 편이라서,
어떤 불에 쓸 수 있는지는
라벨의 적응 화재 표시로 꼭 확인해야 합니다.
제품마다 적응 화재 표시가 다르니까,
ABC라고만 듣고 사기보다 라벨을 직접 보는 게 정확합니다.
가격은 차량용 소화기가 1만 원대에서 5만 원대까지
형성되어 있습니다.
흔한 제품은 2만 원에서 3만 원대에 많이 분포합니다.
3만 원짜리 하나를 내용 연한인 10년 동안 쓴다고 치면,
1년에 3천 원, 한 달에 250원 수준으로 나눠지는 계산이 됩니다.
비싼 제품이 무조건 더 잘 끄는 게 아니라,
자동차 겸용 표시와 능력단위, 적응 화재 표시가 내 차 기준에 맞는지가 먼저입니다.
사기 전에 확인할 목록은 이렇게 정리해 두시면 됩니다.
- 본체에 자동차 겸용 표시가 있는지 확인하세요.
- 승용차 기준인 1단위, 0.7킬로그램 이상인지 확인하세요.
- 라벨의 적응 화재 표시가 A, B, C를 아우르는지 확인하세요.
- 제조일자와 내용연한 표기, 압력계가 녹색인지 확인하세요.
- 호스와 손잡이에 파손이나 녹이 없는지 확인하세요.
둘 곳은 트렁크 깊숙한 곳이 아닙니다
법에서 소화기를 둘 자리를 어디라고 못 박은 건 아닙니다.
다만 자동차 안에서 사용하기 쉬운 곳에 두라고 정해져 있거든요.
그래서 트렁크 깊숙한 곳에 짐에 파묻혀 있는 소화기는
기준에 맞는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불이 났을 때는 문을 열고 바로 손이 닿아야 하는데,
트렁크를 열고 짐을 치우는 동안 시간이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흔한 자리는 운전석 앞 하단이나 조수석 앞인데요,
차종마다 발 공간과 시트 이동 범위가 다르니,
페달을 밟는 데 방해가 되지 않고
시트를 움직여도 걸리지 않는지를
앉아서 직접 확인해 보시는 게 좋습니다.
고정도 함께 챙겨야 합니다.
소화기를 그냥 바닥에 두면
급정거나 급커브 때 굴러다녀
페달 밑으로 들어갈 수 있거든요.
전용 거치대나 고정 밴드로 단단히 묶어두고,
흔들어도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지를 확인하세요.
점검은 한 달에 한 번, 1분이면 충분합니다.
압력계의 바늘이 녹색 범위에 있는지,
본체에 녹이나 찌그러짐이 없는지,
그리고 분말 소화기라면 가끔 뒤집어서 흔들어
안의 분말이 굳지 않았는지를 확인하는 순서입니다.
내용연한은 제조 후 10년 안팎으로
안내되는 경우가 많지만,
기준은 제품에 적힌 표기입니다.
표기된 기한이 지났거나 압력계가 녹색을 벗어났다면
교체 시기로 보고, 낡은 소화기는 가까운 소방서에
폐기 방법을 문의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한 번 사용한 소화기는 그대로 다시 두지 마시고,
제조사 안내에 따라 재충전이나 교체를 확인하세요.
불이 났을 때, 소화기부터 잡지 않는 게 먼저입니다
불이 났을 때 순서는
소화기를 잡는 것부터가 아닙니다.
차를 세우고 시동을 끈 뒤, 탑승자를 먼저 내보내는 게
가장 먼저 할 일입니다.
그다음에 119에 신고하고,
불이 난 위치와 차종, 불이 난 부위를 알리는 순서가
이어지거든요.
소화기를 쓰는 건 그다음 단계이고,
그것도 불이 작고 연기가 적으며 대피할 길이 확보됐을 때만
고려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불이 이미 커졌거나 연기가 많아 앞이 잘 안 보인다면,
소화기를 들기 전에 차에서 멀리 떨어지는 게 먼저입니다.
소화기를 쓸 때는 네 단계로 기억해 두시면 됩니다.
안전핀을 뽑고, 노즐을 불의 밑동에 겨누고,
손잡이를 움켜쥐고, 좌우로 훑으면서 뿌리는 순서입니다.
불꽃 윗부분이 아니라 타고 있는 물질의 밑동에
약제가 닿아야 불이 잦아들거든요.
바람을 등지고 서서
연기가 얼굴 쪽으로 오지 않게 하고,
2미터에서 3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뿌리셔야 한답니다.

엔진룸에서 불이 났을 때는
보닛을 활짝 열어 확인하려 하지 마세요.
산소가 들어가면 불이 더 커질 수 있어서,
틈을 통해 뿌리고
문을 닫은 채로 기다리는 편이 안전합니다.
전기차라고 해서
소화기가 필요 없는 건 아닙니다.
의무 기준은 차종이 아니라
승차 정원으로 정해지거든요.
다만 전기차 배터리에서
열폭주가 시작된 불은 차량용 소화기 하나로 끄기가 어렵고,
꺼진 것처럼 보여도 다시 붙을 수 있다는 점이
내연기관 차와 다릅니다.
그래서 전기차에서 불이 났을 때는 초기 작은 불에만 소화기를 쓰고,
불이 커지거나 배터리 쪽에서 연기가 계속 난다면
멀리 대피한 뒤 119를 기다리는 게
훨씬 안전합니다.
진압을 시도했다가 불이 꺼졌어도
차 가까이로 바로 돌아가지 말고,
소방대의 확인을 기다리세요.
재발화 가능성을
혼자서 판단하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차에 오르기 전에
1분만 투자해 확인해 보시면 어떨까요.
차 안에 소화기가 있는지,
본체에 자동차 겸용 표시가 있는지,
그리고 문을 열고 바로 꺼낼 수 있는 곳에
단단히 고정돼 있는지를 보는 일입니다.
없다면 표시와 단위를 확인해
기준에 맞는 제품 하나를 고르고,
있다면 압력계와 제조일자부터
확인해 두세요.
소화기 하나를 제자리에 두는 일을 마치고 나면,
훨씬 안전한 운행이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