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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미국 플로리다에서 테슬라 모델S가 오토파일럿을 켠 상태로 도로변의 SUV를 들이받는 사고가 났습니다.
옆에 있던 여성이 숨지고 남성이 크게 다쳤습니다.
6년의 법정 공방 끝에 미국 배심원단은 테슬라에 33%의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배상액은 2억4,300만 달러, 우리 돈 약 3,378억 원입니다.
미국 법원이 자율주행 기능의 결함에 대해 제조사 책임을 인정한 첫 사례로 기록됐습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정반대 판결이 나왔습니다.
2021년 서울에서 모델3 운전자가 오토파일럿을 켠 채 한눈을 판 사이 앞차를 들이받은 사고였습니다.
한국 법원은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을 근거로 운전자에게 책임을 물었습니다.
테슬라의 책임은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같은 '오토파일럿 사용 중 사고'인데, 왜 판결이 정반대로 갈렸을까요.
답은 자율주행 '레벨'을 정확히 아는 데 있습니다.

자율주행 레벨에 따른 사고 책임
자율주행은 국제 기준(SAE)으로 레벨 0부터 5까지 나뉩니다.
레벨에 따라 사고가 났을 때 책임지는 주체가 달라집니다.
- 레벨 0~2: 운전 보조 단계. 운전 주체는 운전자입니다. 사고 책임도 운전자에게 있습니다.
- 레벨 3: 조건부 자동화. 특정 조건에서는 시스템이 운전하지만, 전환 요구가 오면 운전자가 받아야 합니다. 책임은 상황에 따라 나뉩니다.
- 레벨 4~5: 고도·완전 자동화. 시스템(사업자·제조사)이 운전 주체입니다.
여기서 가장 큰 오해가 생깁니다.
테슬라 FSD의 정식 명칭은 'FSD (Supervised)', 즉 감독형입니다.
이름은 '완전 자율주행'이지만 국제 분류상 SAE 레벨 2입니다.
FSD를 켜고 사고가 나면 법적 책임은 전적으로 운전자에게 있습니다.
운전자는 전방을 계속 주시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한국 법제는 더 명확합니다.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상 사고가 나면 1차적인 손해배상 책임은 차를 운행한 자(차주·운전자)에게 있습니다.
자율주행자동차법도 이 운행자 책임 원칙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차량 결함이 명확히 확인된 경우에만 보험회사가 제조사에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레벨 0~2 (FSD Supervised 포함): 운전 주체 운전자, 사고 시 1차 책임 운전자
- 레벨 3 (조건부 자동화): 조건 내에서는 시스템, 전환 요구 시 운전자. 책임은 상황별 판단 (한국은 운행자 책임 원칙)
- 레벨 4~5 (무인 로보택시 등): 운전 주체 시스템·사업자, 사고 시 1차 책임 사업자·제조사
운전자가 꼭 알아야 할 함정 5가지
1. 'FSD'라는 이름의 함정
Full Self-Driving이라는 이름과 달리, 테슬라 FSD는 레벨 2입니다.
'완전'이라는 단어에 속아 손을 놓고 있으면, 사고 시 책임은 온전히 운전자 몫입니다.
2. 핸즈프리는 자율주행이 아닙니다
고속도로에서 손을 떼고 달리는 기능도 레벨 2입니다.
시스템이 요구하면 즉시 운전대를 잡을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손을 뗐다는 사실 자체가 면책 사유가 되지 않습니다.
3. 꼼수 장치는 책임을 더 무겁게 합니다
운전대 경고음을 무력화하는 '오토파일럿 헬퍼' 같은 장치가 시중에 유통되고 있습니다.
이런 장치를 달고 사고가 나면 운전자의 고의성이 인정돼 책임이 더 무거워질 수 있습니다.
제조사가 불법 장치 사용을 막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지만, 단속의 1차 대상은 운전자입니다.
4. 사고 순간은 기록됩니다
자율주행차에는 자율주행시스템의 작동·해제 정보와 개입 요구 등을 기록하는 장치를 달아야 하고, 기록은 6개월간 보관됩니다.
"시스템이 알아서 했다"는 주장은 기록 앞에서 검증됩니다.
오히려 기록은 운전자의 과실을 입증하는 증거가 될 수도 있습니다.
5. 보험 처리는 현행 자동차보험으로 됩니다
자율주행 중 사고도 일단 자동차보험으로 처리됩니다.
이후 차량 결함이 입증되면 보험회사가 제조사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구조입니다.
운전자가 직접 제조사와 싸우는 구조가 아닙니다.
따라서 보험 가입 시 주행 보조 기능 사용 여부를 숨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레벨 3 시대, 책임의 경계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미국 판결이 보여준 것은 레벨 2에서도 제조사가 완전히 면책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배심원단은 테슬라가 오토파일럿을 고속도로용으로 설계해놓고 일반 도로에서 쓰이도록 방치한 점을 문제 삼았습니다.
테슬라 측은 항소 방침을 밝혔지만, '이름과 달리 운전자가 계속 감독해야 하는 시스템'을 팔 때 제조사가 져야 할 주의 의무가 있다는 쟁점은 남았습니다.
한국도 변화의 조짐이 있습니다.
법조계에서는 완전 자율주행 단계에 진입하면 운전자의 개입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는 만큼, 제조사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기술은 레벨 3을 향해 가는데, 법은 아직 레벨 2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 간극이 바로 지금 운전자들이 서 있는 자리입니다.
오늘부터 기억할 체크리스트
정리하면, 주행 보조 기능을 쓰는 운전자가 기억해야 할 것은 다음 5가지입니다.
- 내 차의 주행 보조 기능이 몇 레벨인지 확인합니다. (FSD Supervised는 레벨 2입니다)
- 레벨 2에서는 전방 주시 의무가 운전자에게 있습니다. 기능의 이름을 믿지 마세요.
- 경고음을 무력화하는 장치는 절대 달지 마세요. 사고 시 책임이 가중됩니다.
- 사고가 나면 자율주행 기록장치의 데이터를 확보하세요. 책임 판단의 핵심 증거입니다.
- 중고차로 주행 보조 옵션이 있는 차를 살 때는 소프트웨어 버전과 사고 이력을 함께 확인하세요.
자율주행 기술이 좋아질수록 '누가 운전하는가'보다 '누가 책임지는가'가 중요해집니다.
핸들에서 손을 떼기 전에, 책임의 주인이 누구인지 먼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