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잡생각 시리즈 #1] FSD v14.3.9 공개를 통해 본 '개입하는 기계'의 철학

손끝으로 전해진 낯선 감각
지난주,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습니다. 좁은 편도 1차선 도로를 스탠다드 모드로 달리고 있었는데, 저는 FSD를 사용 중이었고 위험을 느끼지 못한 채 운행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반대편에서 오던 차량이 중앙선을 살짝 넘어 들어오는 순간, 제가 브레이크를 밟기도 전에 차가 스스로 살짝 감속하며 오른쪽으로 미세하게 라인을 조정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 미묘한 저항감—운전대가 저항 없이 저절로 움직이는 느낌—은 지금까지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낯선 감각입니다. 제가 운전석아 앉아 있으나 결국 판단은 FSD 소프트웨어가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FSDV14.3.9에는 훨씬 적극적인 FSD의 개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수동운전 중에도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FSD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운전자를 대신해 위험 상황을 탈출할 수 있는 기능입니다.
보조자에서 개입자로
바로 이 지점에서, FSD v14.3.9의 새로운 개입 기능은 단순한 기능 업데이트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지금까지 FSD는 '운전자가 요청하면 대신 운전해 주는 보조 시스템'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변화는 그 관계를 근본적으로 뒤집습니다. 이제 기계는 인간이 부르지 않아도,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게, 스스로 판단해 인간의 행위에 개입할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이 작은 기술적 변화는 인류가 도구와 맺어온 관계의 오랜 역사를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인류사에서 도구는 언제나 인간의 '연장(延長)'이었습니다. 돌도끼, 자동차, 컴퓨터 모두 인간이 의도를 품고 그 의도를 실행하기 위해 손을 뻗는 대상이었습니다. 도구는 수동적이었고, 그 수동성이야말로 도구를 도구답게 만드는 본질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겪은 것처럼 위급 상황에서 스스로 개입하는 FSD는 더 이상 순수한 도구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판단을 기다리지 않고, 때로는 인간의 판단을 넘어서서 행위하는 '준(準) 행위자'에 가깝습니다.
행위의 주체는 누구인가 — 아렌트의 질문
철학적으로 보면 이는 행위(agency)의 주체가 누구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다시 소환합니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행위(action)를 노동, 작업과 구분하며, 행위란 예측 불가능성과 새로움을 특징으로 하는, 오직 인간만이 지닌 고유한 능력이라 보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도로 위에서 경험한 그 찰나의 개입은 정해진 알고리즘의 산물이면서도, 동시에 저 자신도 예측하지 못한 순간에 나타난 새로운 개입이었습니다. 기계가 인간을 대신해 '예측 불가능한 순간'에 반응한다는 것은, 아렌트가 말한 행위의 영역에 기계가 발을 들이는 셈입니다. 이는 행위의 주체성이 더 이상 인간에게만 배타적으로 속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편한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사고가 났다면, 책임은 누구의 것인가
한편 이 변화는 책임(responsibility)의 문제와도 깊이 연결됩니다. 만약 그날 제가 겪은 상황에서 사고가 났다면, 그것은 제 판단 실패였을까요, 아니면 FSD의 개입이 충분하지 않았던 탓일까요. 전통적으로 자동차 사고에서 책임의 소재는 명확했습니다. 운전대를 쥔 사람이 책임을 졌습니다. 그러나 수동 운전 중에도 기계가 개입할 수 있다면, 사고가 났을 때 그것이 인간의 판단 실패인지, 기계의 개입 실패인지, 혹은 기계가 개입하지 않은 것 자체가 실패인지를 가르는 경계가 흐려집니다. 독일 철학자 한스 요나스는 기술 시대의 책임 윤리를 논하며, 인간이 만든 힘이 인간의 예측과 통제 범위를 넘어설 때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책임 개념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FSD의 개입은 정확히 그 지점에 서 있습니다.
유한한 인간, 그것을 보완하는 기계
더 근본적으로는, 이 기술은 인간의 '취약성(vulnerability)'을 기계가 대신 감당해 주는 방식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순간적인 판단 오류, 피로, 방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날 제가 미처 반응하기 전에 차가 먼저 움직였던 것처럼, 위급 상황에서 인간을 대신해 개입하는 기계는 인간의 이 근원적 유한성을 보완해 줍니다. 이는 한편으로는 인간을 사고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주는 고마운 진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이 자신의 유한성과 씨름하며 길러온 주의력과 판단력이라는 실존적 능력을 점차 기계에 위탁하게 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마르틴 하이데거식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도구를 '손안에 있는 것(Zuhandenes)'으로 다루다가, 어느 순간 그 도구가 스스로 판단하기 시작하면 우리와 세계 사이의 관계 자체가 재편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운전대를 잡고 있으나, 완전히 잡고 있지 않은 시대
결국 그날의 그 짧은 순간—제 손이 아직 놀라기도 전에 차가 먼저 반응했던 그 감각—은 단순한 안전 기능의 진화가 아니라, 인간이 처음으로 '나를 대신해 판단하는 기계'와 일상적으로 동승하는 시대에 들어섰다는 상징적 사건이었습니다. 운전대를 잡고 있으면서도 완전히 운전대를 잡고 있지 않은 이 기묘한 감각은, 앞으로 인간과 기계가 맺게 될 훨씬 더 넓은 관계 방식의 축소판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기계에게 더 많은 판단을 넘겨줄수록 더 안전해지지만, 동시에 인간이라는 존재를 규정해 온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지는 주체'라는 오래된 정의는 조금씩 다시 쓰이고 있는 셈입니다.